조선 위클리 비즈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윤성원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지난해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냉각기를 맞았다.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오지 못했고, 주요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다. 베인 집계에 따르면, 아시아 사모펀드 시장의 거래 규모는 2021년 2920억달러에서 2022년 1~3분기 1400억달러로 급감했다. 지난해 이 시장의 자금 조달 규모도 1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우울한 경제 전망이 쏟아지는 2023년을 맞게 된 경영계의 올해 키워드는 ‘미·중 디커플링’이다. 지난해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코로나19 방역 조치,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외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이 세 변수는 올해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는 약 2~3년에 걸쳐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미중 디커플링’은 향후 몇 년간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 지형을 바꿀 최대 변수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트럼프 정권에 이어 바이든 정권에서도 중국의 굴기(崛起)를 저지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안보 환경, 세계 교역망 등 국제 질서를 재편하면서 하이테크 기업 육성에 공을 들여온 중국은 큰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미·중 패권 경쟁은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중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사무 기기, 컴퓨터 등 주요 제조 품목은 여전히 중국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 덕분에 중국 경제는 국내 소비를 중심으로 올해 4~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혜택은 오롯이 중국 기업이 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금 더 장기적으로 내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 기업이 미국의 견제로 더 이상 ‘기술 고속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은 반사 이익을 누릴 기회를 얻었다. 한국은 반도체, 스마트폰, 배터리, 바이오 등 주요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글로벌 강자 입지를 다지는 기로점에 섰다. 탈세계화나 미·중 디커플링 속에서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경제의 최대 변수지만, 아시아 지역은 미·중 무역 전쟁이 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국내외 경영 전략은 이런 지정학적 변수와 급변하는 거시 환경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경기 둔화를 방어하면서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신기술 투자를 늘리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향후 18~36개월 앞을 내다보고 시나리오를 다시 짜야 한다. 최선의 시나리오인 소프트 랜딩부터, 스태그플레이션, L자형 회복, U자형 회복, 경기 침체 등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다양한 거시 환경과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해 투자 예산 집행과 자금 조달을 해야 한다. 명백한 실패 요소를 없애는 게 ‘성공 방정식’을 찾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