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위클리 비즈
[베인앤드컴퍼니의 조직 경영법] (2)
불필요한 모임 없애고 결재 단계 줄이면 생산성 21% 늘어난다 회의만 줄여도 사무직 근로시간 40% 줄어들어… 조직 구조 단순화해야 의사결정 빨라져
국내 중견 제조업체의 해외개발부 박모 과장은 올 들어 정시 퇴근해본 날이 드물다. 지난해 실적이 부진하자, 대표이사가 부사장들에게 묘안을 찾으라 지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기획, 연구·개발, 구매, 제조, 영업 담당 부사장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에 사업 전략 회의를 열기로 했다. 실무 부서에선 월요일부터 회의 자료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박 과장은 다른 부서에서 보내온 회의 공유 자료를 살펴보는 데 정규 업무 시간을 고스란히 쓴다. 본업인 해외 고객사 관리는 늦은 오후에야 시작한다. 야근이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해외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한 대기업은 최고 경영진이 매주 성과 점검 회의를 연다. 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경영진이 함께 혹은 각자 여는 회의 시간을 모두 합산해 보면 연 7000시간이다. 회의 시간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조직 관리자들이 회의 안건을 점검하며 소모하는 시간이 연 2만시간, 회의 자료 검토를 위해 실무팀이 쏟는 시간은 연 6만3000시간이다. 여기에 회의 관련 이메일 교환, 정보 수집 시간까지 합치면 최고 경영진이 여는 주간 회의 때문에 조직 전체가 쓰는 시간이 연 30만시간에 이른다. 베인 연구진이 미국에 있는 17개 대기업의 의사소통 과정과 회의 관행을 분석해보니 기업 고위 임원들은 매주 평균 이틀 이상을 각종 회의에 바치고 있었다. 조직원 간 대화가 많을수록 의사소통이 잘되는 기업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목적도 분명하게 정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여는 회의는 조직 전체 생산력을 갉아먹는다.
실제 기업들의 생산성과 조직적 시간 관리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니 잘못된 회의 관행과 내부 절차로 낭비하는 시간 때문에 기업 생산성이 21%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자원이다.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아웃라이어(outlier·일반 기업 수준을 넘어서는 뛰어난 성과를 거둔 기업)들은 같은 자원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다.
구글, 팀 단위 운영해 의사 결정 빨라
이런 생산성 저하를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복잡한 조직 체계, 명확하지 못한 의사 결정 구조와 같은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할 때는 조직 구조도 함께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기업 규모가 커지면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부서가 급증한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상호작용과 재검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직 전체의 시간 관리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회사 전체의 운영 모델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창업 초기 소규모 인원의 민첩한 의사 결정으로 성공을 거두던 기업도 사업을 다각화하고 조직 덩치가 커지면 의사 결정이 느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여러 사업부가 상호 소통하며 결정할 사항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조직 전체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에너지 기업 사솔(Sasol)이 대표적인 예다. 사솔은 탄탄한 재무 구조를 자랑하며 성장하던 기업이었지만, 다양한 사업군을 만들어 성장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됐다. 운영 고정비용이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늘었는데, 새 전략을 수립할 때마다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부서와 사람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여러 부서가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 안건은 최종 실행까지 몇 주나 걸렸다. 당시 강세였던 원유 가격이 급변하기라도 하면 제때 대응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문제를 인지한 사솔 경영진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구매·제조·판매라는 세 가지 큰 기준을 두고 조직을 재편했다. 서로 업무가 겹치는 부서들을 점검해 통·폐합했다. 72개에 달했던 지사는 35개로, 49개에 달했던 회사 내의 각종 위원회는 13개로 줄었다. 덕분에 사내의 각종 회의에 걸리는 시간이 전보다 60% 줄었고, 의사 결정 속도가 빨라졌다. 원유 가격이 급락했을 때 사솔은 업계에서 가장 먼저 종합 대응책을 발표할 수 있었다.
구글은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민첩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회사다. 구글은 이를 위해 독특한 운영 모델을 택했다. 모든 조직이 팀 단위로 움직이고, 한 명의 관리자가 여러 팀의 관리를 맡는 것이다. 관리자는 여러 팀을 관할하기 때문에 미시적인 그림보다 큰 그림을 보고 결정한다. 팀장 입장에서는 회사에 아무리 다양한 팀이 생겨도 보고 절차가 크게 변하지 않아 시간 낭비가 없다. 구글의 사례처럼 초기 의견 수렴 단계에는 열린 구조가 필요하지만 본격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은 꼭 필요한 범위로 제한해야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회의는 짧게, 안건은 간결하게
경영진의 회의는 조직 전체의 시간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꿔 말하면 경영진의 회의가 효율적으로 운영될수록 조직 전체가 시간을 번다는 얘기다. 2006년 경영난에 빠진 포드자동차에 새로 부임한 앨런 멀럴리 최고경영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위 경영진이 매일 회의 준비를 위해 직원들을 채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당시 포드 고위 경영진은 한 달에 한 번씩 5일 연속 회의만 하는 '회의 주간'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회의 주간이 다가오면 일선 직원들은 본업을 제쳐놓고 문서 작성과 자료 수집에 열중했다.
멀럴리는 이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회의 주간을 없앴다. 대신 매주 한 차례 모이는 주간 경영 계획 회의로 대체했다. 회의 안건은 늘 사전에 공지했고, 안건을 설명하는 방식도 간결하게 표준화했다. 준비할 주제가 명확해지자 회의 준비에 투자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경영진들의 회의 시간이 한 달에 50시간에서 20시간 정도로 줄었고, 조직 전체가 회의에 쏟는 시간은 수천 시간 줄었다. 중요한 의사 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포드자동차는 민첩한 조직 운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회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기업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매년 100명의 직원과 휴양지로 떠나 그해의 업무 우선순위를 정했다. 잡스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적고, 형편없는 것은 지워 나갔다. 그렇게 한참 진행한 뒤 10개의 목록이 남았다. 잡스는 그 가운데 일곱 개를 지웠다. "우리가 올해 할 수 있는 건 이 세 개뿐입니다." 잡스의 지휘 아래 임직원들은 어떤 업무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은 회의 준비 등에 뺏긴 업무 시간을 야근이나 주말 근무로 보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불필요한 회의와 이메일 공유를 줄여나가는 것이 출발점이다. 일단 회의 소집 권한부터 신중하게 배분해야 한다. 꼭 필요한 참석자가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회의 결정권을 허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러 기업의 사례를 연구한 결과, 안건에 꼭 필요한 인원만 소집해 최소한 횟수로만 회의를 진행해도 전체 사무직 임직원의 근로 시간을 40% 줄일 수 있다. 회사의 시간 관념이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와 생산성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