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비즈니스리뷰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빨라지면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인구절벽’은 현실이며 한국 사회는 절벽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출산 지원책이나 개방적인 이민 정책 등 다양한 방안을 두고 논의가 활발하지만 그보다 훨씬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여성 인력을 다시 무대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여성 인력은 높은 고등교육 수준과 직업훈련으로 그 어느 국가보다 우수한 자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핵심 과제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
1. 인구절벽 시대의 우선순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2020년 이후 이미 시작됐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가장 많은 시기를 살고 있지만 10년 뒤에는 9%, 20년 뒤에는 지금보다 22%가 감소해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노동 인력의 양과 질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향후 10년, 20년 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여성 인력 활용은 필수적이다. 한국은 인종적, 사회적 동질성이 높은 국가다. 글로벌 인종 구성은 아시아인 약 49%, 아프리카인 약 17%, 유럽인 약 15% 등 다양하지만 한국은 97%가 한민족으로 구성된 단일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글로벌 평균은 약 43%인 데 비해 한국은 약 70%에 달하는 등 인구 상당수가 유사한 생활 환경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국내 전체 인구의 49%를 차지하는 여성을 경제활동 인력으로 인지하고 육성하는 것은 인재풀의 양적 극대화뿐만 아니라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다양성이 기업 활동 및 사회 전반에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2. 심화하는 남녀 갈등
앞에서 살펴봤듯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최근 남녀 갈등이 심화하면서 성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더욱 다루기 어려워지고 있다. 남녀의 정치적 이념 차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남성은 점점 보수화하는 반면 여성은 진보화하면서 그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서구권 국가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튀니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에 걸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성별 분화가 타 국가 대비 더욱 뚜렷한 국가로, 남녀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그 사이에는 ‘캐즘(chasm)’이 생겼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상황은 극단적으로 젊은 남녀가 분열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둘로 나뉘었다. 결혼율은 급격히 감소했고, 출산율도 가파르게 떨어져 2022년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성향은 단순히 투표 경향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남녀 간 정치적 이념 차이는 곧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이어지고, 사회와 경제 각 부문에서 끊임없이 진통과 잡음을 일으킨다.
성별 분화가 가속화하는 현상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이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도전하면서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확실성의 증가로 경쟁이 더욱 심화하면서 남성은 기존 지위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졌고, 여성은 높은 지위를 쟁취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의제에서 성별 간 사회적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3. 정체된 성 담론
Z세대 및 알파세대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젠더 담론에 있어 과거보다 다면적이고 복잡한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LGBTQ(성소수자)와 같이 확장된 젠더 개념을 사용하며, 생물학적 여성을 단일 집단으로 그룹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특정 계층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 밀레니얼세대가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보고 성차별 개선을 위해 여성 친화적 복지 및 성평등 제도를 촉구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역차별 논란이 발생하거나 다양성 정책에 대한 소송 사례가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다양성 관련 투자에 대한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하버드대에서 학생 구성의 인종적 다양성 유지를 위한 소수 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 위헌으로 판결 나면서 전국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반발이 거세졌다. 스타벅스는 총 직원의 30%를 유색인종으로 구성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미국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Electrolux)의 경우 미국 지사 사내 변호사가 다양성 의무화 정책으로 인해 승진이 누락되자 회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과 관련해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글로벌 및 국내 기업은 DEI 정책을 추진하는 팀을 해체하거나 다양성 활동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다수의 업체가 연례보고서에서 성다양성 관련 언급을 하지 않거나 소수자 대상의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여성의 날과 관련한 행사나 캠페인을 취소하는 등 변화가 발견되고 있다.
한국 여성 인력의 현주소
1. 낮은 성평등 수준
한국은 2022년 기준, 여성의 92%가 고등교육을 수료해 OECD 평균 88%, 전 세계 평균 45% 대비 교육 수준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제도로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으며 이는 전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의 여성 고용률로 이어졌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여성 고용률 평균이 57%인 데 비해 한국은 61%로 더 많은 여성이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한국의 성평등 지표는 글로벌 주요국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OECD 29개국 중 29위로, 2023년까지 1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한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평가한 글로벌 성 격차 지표(Gnder Gap Index, GGI)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 146개국 중 105위에 그쳤다. 특히 두 지표에서 공통적으로 여성 중간관리자 및 임원 비율과 이로 인한 남녀 임금 차이 부문에서 최하위였다. 경력의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여성 대표성이 낮아지는 문제와 남녀 임금 격차 확대는 닭과 달걀처럼 얽혀 있다.
2. 경력의 사다리에서 이탈하는 여성들
대학을 졸업한 많은 한국 여성이 직장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지만 직급별로 여성 고용 비율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간중간 급격한 이탈이 일어났다. 특히 선진국과 비교할 때 대리급과 차장급에서 여성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신입 직급은 여타 국가와 비슷한 40% 이상의 여성 고용률을 보이지만 대리급에서는 타 국가 대비 3분의 2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여성 고용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차장급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7%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임원급 여성 비율은 4~5%에 불과하며 이는 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베인 분석 결과 코스피 상장사 중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의 수가 최근 3년 이상 과반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 여성 임원의 비율은 매우 낮다. 2022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할 수 없도록 하는 여성이사할당제가 도입되면서 여성 이사 비율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2012년부터 여성이사할당제를 시행한 대부분의 OECD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다. OECD의 상장기업 이사회 중 여성 비율은 2019년 25.4%에서 2023년 32.5%로 꾸준히 증가했으나 한국은 2019년 4.3%에서 2023년 6.8%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 기업 내 여성 임원의 수도 적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여성들의 입지는 좁다.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 대부분은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관리자(CFO)와 같은 핵심 의사결정권자 역할을 맡기보다는 인사, 홍보 등과 같은 지원 부서의 리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시가총액 500대 기업의 현황을 보면 핵심 의사결정권자 중 여성 임원은 3%지만 지원 부서장을 맡고 있는 여성 임원은 8%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국 여성 CEO 비율이 3%인 데 비해 글로벌 평균 여성 CEO 비율은 6% 수준으로, 한국은 글로벌 현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 임원이 회사의 주요 전략에 대한 결정이나 경영 참여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남성 임원보다 제한적임을 의미하며 여성 대표성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3. 사회·문화적 인식
여성의 커리어 발전을 방해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도 여전하다. 베인이 국내 유수 기업의 여성 임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평가 기준이 모호해지고, 여성 리더에 대한 여러 편견에 부딪힌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면 여성 리더는 직업의식과 조직 몰입도 면에서 남성보다 부족하다는 식의 편견이다. 이처럼 직장에서 여성들은 무의식적인 차별을 경험하는 한편 가정에서도 육아나 살림을 하는 데 남성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자녀의 성공이 엄마의 교육열에 달려 있다는 자녀 중심의 성공 신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여성들이 커리어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은 여성의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더욱 무겁게 하는 계기가 됐다. 여성가족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성별에 따른 가정 내 역할 분담이 더욱 고착화돼 ‘경제적 부양은 남성이, 가사와 육아는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2020년에 비해 2023년에 더 높아졌다. 이는 팬데믹 시기 여성의 양육 부담이 증가하면서 가정 내 역할이 더욱 양분화됐기 때문이며 최근 성평등 논쟁의 과열로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목소리가 강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러한 성별 고정관념은 여성의 경력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여성 인력을 통한 지속가능 성장
인구절벽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다. 베인의 분석 결과,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정규직 비율 및 남녀 임금 격차 수준이 G7 국가 평균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10년간 매년 0.7%포인트의 GDP 성장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을 기준으로 2033년까지 10년에 걸쳐 각 지표가 점증적으로 개선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만약 이런 개선 없이 생산가능인구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유지된다면 10년간 GDP 성장률은 연평균 1.9% 수준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개선함으로써 0.1%포인트, 여성의 정규직 비율을 개선하면 여기서 또 0.2%포인트, 남녀 임금 격차를 줄여 나가면 0.4%포인트가 매년 추가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성 인력이 가진 잠재력을 확대하면 2033년 기준 165조 원 수준의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명목 GDP 순위는 2023년 OECD 국가 중 10위에서 2033년 8위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1. 여성 임원 비율과 기업의 성과
여성 인력이 가진 잠재력을 확대하는 것은 국가적 목표와 경제 성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 베인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의 임원 비율과 재무지표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실제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여성 임원의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기업가치와 성장성이 더 높았다. 각 산업별로 여성 임원 비율이 상위 25%에 속하는 기업 그룹은 하위 25% 그룹에 비해 평균 2배 이상의 기업가치와 성장성을 보였다. 구체적으로는 기업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기업가치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V/EBITDA)과 기업가치 대비 매출액(EV/Sales), 주가매출액비율(PSR)에서 각각 2.4배, 2.1배, 3배 수준의 차이를 보였고 성장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증가율에서 2배 수준의 차이를 보였다.
여성 임원 비율에 따른 기업 수익성에 대한 민감도를 분석한 결과로는 여성 임원 비율이 30% 이상일 때 유의미한 수익성 성과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 임원 비율이 55%를 초과할 경우에는 성 다양성이 오히려 감소해 수익성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균형 잡힌 성별 대표성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30~55%인 기업의 평균 EBITDA 마진은 약 18%인 반면 30% 미만이거나 55% 이상인 기업의 평균은 약 9.7%에 그쳤다.
2. 성 다양성의 이점
임원진의 성별 다양성과 기업 성과 간 긍정적 관계는 상관관계로 보기보다 인과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리더십의 다양성이 혁신적인 아이디어 도출, 더 나은 의사결정 및 문제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집단의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연구와 현장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일리노이대 등 교수들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5에 따르면 동일한 내용이더라도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더 건설적이고 논리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이면 의사결정에 비효율이 생기고 논의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그 반대였다. 이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민주당원인지 공화당원인지를 물은 뒤 추리소설을 읽고 범죄자가 누구인지 추론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은 다른 그룹과의 회의를 준비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에세이를 작성했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 같은 정당의 사람을 설득할 때보다 에세이 내용의 정교함이나 준비 정도가 훨씬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논의의 질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또한 성별, 연령, 지역 등 다양성 요소를 포함한 그룹은 의사결정의 질이 높고 결과에 대한 만족도와 긍정적인 평가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6 도 있다. 이 연구에서는 전원이 남성으로만 이뤄진 팀부터 성별과 연령, 지역 등 다양성 요소를 하나씩 추가해 총 4개 그룹을 형성한 후 팀별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내리게 했다. 그 결과, 다양성이 높은 집단일수록 완성도가 높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들은 다양성이 기업 성과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기제임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기업 내 많은 현직자는 다양성이 확보된 리더십이 긍정적인 성과를 창출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리더가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고 집단사고를 감소시켜 다양한 고객과의 공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인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 한 에너지 기업의 최고인사책임자는 “회의의 성격에 따라 남녀 특성에 의해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리더십의 다양성은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에도 기여한다. 2017년 나이키가 선보인 ‘프로 히잡(Pro Hijab)’이 그 예다. 나이키는 무슬림 여성 운동선수를 위해 운동 시에 착용할 수 있는 특수 소재의 히잡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무슬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단순한 기능성 제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됐고, 브랜드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나이키는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여성 임원 및 소수 인종 임원 할당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여성 임원 비율을 늘려 여성 대표성을 높이는 것은 여성 인재 확보와 유출 방지에도 중요하다. 다양한 유형의 여성 리더의 존재는 여성 직원들에게 승진에 대한 동기부여를 제공하며 직원들의 이직 및 이탈을 막아 인사관리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격차는 선진국 가운데 심각한 수준”이라며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는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노동인구가 늘어나면 한국을 포함해 많은 선진국이 겪는 경제활동인구 정체 및 감소 추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급격히 감소하는 경제활동인구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늘 여기에 있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여성 인력이 핵심 열쇠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에 나서야 할 때다.
DBR mini box I: Interview : ‘베인앤드컴퍼니, 性 다양성 리포트’ 배정희 파트너
“인구절벽 코리아, 여성 인력 대책 없으면 곧 추락”
[동아비즈니스리뷰=신민기 객원기자] 베인앤드컴퍼니 한국 오피스는 성 다양성 관련 리포트 ‘기업 내 여성 리더십 확대: 인구 절벽 시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을 발간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한국의 GDP에 미치는 영향을 실질적으로 분석했다. 여성 노동력을 국가적 생산성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시도다. 이 보고서에서 베인은 500대 상장기업의 지난 10여 년간의 데이터를 활용해 리더십의 성별 다양성과 기업의 재무성과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밝혀냈다. DBR에 독점 공개한 리포트 작성을 총괄한 배정희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조사 결과 한국 경제에서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 파트너에게 보고서를 발간한 배경과 시사점을 물었다.
왜 지금 여성인가.
한국의 인구 그래프 추세를 보면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함에 따라 우리 경제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고속 성장하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때때로 일시적인 타격을 입기도 하고 갈수록 성장률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성장은 계속돼 왔다. 매년 성장하는 한국에서 살아온 지금 세대는 성장하지 않는 한국을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가 역성장하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현실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사회 시스템이 흔들리고, 상대적인 빈곤과 그에 따른 박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성을 지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더불어 현재 갖고 있는 노동력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 답이 바로 여성 인력인 것이다. 지금은 여성의 경제적 참여 확대가 시급한 과제지만 앞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이민자 등으로 논의가 확장될 것으로 본다.
어쨌든 기업은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여성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연구 기관과 기업에서 한결같은 결과를 말하고 있다. 성 다양성이 회사의 비즈니스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회사들은 조직 구성에 소비자, 나아가 전 세계 인구 구성을 반영하기 위해 앞다퉈 다양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비즈니스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별과 인종, 지역 등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동질적인 집단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다양한 시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 동질성을 바탕으로 구성원 간에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은 ‘집단사고(groupthink)’i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1996년 일어난 에베레스트 등반 참사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 등반가인 랍 홀과 스콧 피셔가 각각 가이드와 고객, 셰르파로 구성된 원정대를 이끌고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다 사상 최악의 맞게 된 사건이다. (i 미국의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어떻게 잘못된 결정에 이르게 되는지를 연구하면서 '집단사고'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하는사 고의 경향으로 정의했다.)
에베레스트를 다섯 차례나 정복했던 노련한 전문 등반가 랍 홀은 기상 악화로 시간이 지체돼 등정을 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편향적인 사고와 의사소통 부족으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고, 그와 대부분의 팀원은 사고를 당했다. 반면 홀에 비해 경험이 부족했지만 팀원들과의 협력과 포용을 중시했던 피셔의 팀은 리더인 그는 비록 살아 돌아오진 못했지만 더 많은 인원이 생존한 채 하산할 수 있었다.
등반 과정에서 여러 차례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강한 리더가 이끈 원정대는 반드시 등정한다는 목표에 눈이 멀어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특히 성장 지향적인 조직은 다양성보다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는 빠른 의사결정의 매력에 유혹당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리더십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더 우수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양성의 순기능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나.
다양성은 조직의 회복력을 높인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 요인이 산재한 가운데 다양성이 있는 조직은 급격한 변화와 위기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다양한 이가 모이면 서로 다른 접근방식과 전략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더 나은 리스크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만족도와 참여도를 높이기도 한다.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직원들은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조직과 일에 몰입한다. 직원들의 이탈을 막아 인사 비용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 만약 조직이 다양성을 갖췄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표면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조직문화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포용적인 조직문화를 확립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이 조직 안에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평등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이로 인해 거꾸로 남성이 차별을 받게 된다는 역차별 논란도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양성이 조직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별 쿼터제 등은 개인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역차별일 수 있다. 하지만 성평등 문제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을 가지고 학교 입학생을 뽑는다고 가정해보자. 한 학생은 족집게 과외를 받아서 100점을 받았다. 다른 학생은 아무런 사교육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해 90점을 받았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100점 받은 학생을 뽑아야 하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90점 맞은 학생은 더 큰 잠재력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시험점수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맥락과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불리한 환경에서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다면 그 성과와 맥락을 함께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여성 인재를 많이 뽑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파이프라인 중간에 새는 곳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 조직의 수많은 의사결정 과정과 인사 제도에 담긴 성별에 따른 편향과 보이지 않는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베인은 결과 중심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평가 대상자와 관련된 불필요한 정보를 배제하고, 과거 성과를 광범위하게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성들 역시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수동적으로만 주장하지 말고 나와 다른 부분에 대해 여성들도 배우고 도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