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위클리비즈
[WEEKLY BIZ] 베인의 True North
[조선일보 위클리비즈=베인앤드컴퍼니 이혁진 대표] 디즈니를 ‘콘텐츠 제국’으로 이끈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마블 스튜디오를 42억달러(약 5조원)에 인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마니아층이 두꺼운 마블 캐릭터를 TV, 영화, 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대중 앞으로 끌어내 새로운 핵심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금융 위기 여파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그는 같은 해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에 투자한 데 이어 2012년엔 스타워즈 제작사인 루카스 필름을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경기 침체기에 내린 과감한 결단은 10년간 디즈니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같은 해 제약 회사인 화이자도 과감한 결단으로 기사회생 기회를 찾았다. 화이자는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 특허 만료를 앞두고 매출 급감 위기에 봉착했는데, 백신 특허를 갖고 있던 와이어스를 인수해 파이프 라인 확장 기회를 얻어 경기 침체 고비를 넘었다. 독일 화학 기업인 바스프(BASF)도 비슷한 시기 전 세계 산화 방지제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시바(Ciba)를 54억달러에 인수해 경기 침체기에도 매출을 10% 가까이 늘리는 성과를 냈다.
많은 경영진이 경기 침체기엔 투자를 꺼린다. 그러나 선구안을 지닌 리더는 이 시기에 업계에 지각 변동을 불러올 거래를 성사시킨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일부 리더는 인수 합병(M&A)을 ‘일생일대의 한 방’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불행히도 M&A 세계에서 ‘홈런’은 매우 드물다. 이 세계에서 성공하는 리더는 꾸준히 ‘안타’를 친 선수다.
이는 과거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베인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2845기업의 실적을 분석을 한 결과, 꾸준히 M&A를 이어온 기업의 연간 평균 총주주수익률(TSR)은 7.9%였던 반면, 특정 대형 거래에만 집중했던 기업의 TSR은 3.7%에 그쳤다. 실적 차이가 두 배 넘게 벌어진 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같은 일은 반복적으로 하면 그 일을 더 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M&A 경험이 미숙한 회사는 설령 대형 딜을 성사시키더라도 경험 미숙으로 비극이 벌어지는 경우가 잦다.
금리 인상으로 실패 비용이 막대해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실사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엔 업계 곳곳에서 M&A 실무진이 과거보다 더 철저히 투자 대상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최근 한 기업은 핀테크 기업 투자로 경영진이 흥분에 휩싸였다가, 현장을 둘러보고 냉정하게 다른 투자 대상을 물색하기로 했다고 한다. 구글독스로 일 대부분을 처리하는 주먹구구식 업무 프로세스가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기업 실무진은 ‘첨단 기술로 보험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한 스타트업을 방문했다가 핵심 비즈니스를 직원들의 수기(手記)로 돌려 막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 시너지가 발생할지 몰라도, 정작 인수 목표였던 기술은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실사 과정에서 투자를 접기로 했다고 한다.
현 시장에는 매물은 늘고 기업 가치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위기는 이미 왔고, 기회는 다가오고 있다. 모두 다 위기라 생각할 때 기회를 보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다.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