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안상현 기자]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재계 핵심 화두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으로 바뀌었습니다.”
새티쉬 샹카르(Satish Shankar)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미·중 갈등과 신종 코로나 팬데믹,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기후변화 등 세계적 규모의 위기가 지속하면서 기업의 생존 방식이 바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3대 경영 컨설팅사로 꼽히는 베인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총괄 관리하는 그는 “요즘 기업들은 생산 효율을 좀 희생하더라도 회복 탄력성을 얻으려는 추세”라며 “가령, 인건비가 가장 싼 곳에 생산 설비를 집중시키는 대신 3~5개 지역에 다각화하면 한 지역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샹카르 대표가 24년째 몸담고 있는 베인은 1973년 미국 보스턴에서 설립돼 현재는 38국에 63개 지사를 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이다. 지난 48년간 전 세계 500대 기업의 63%가 베인에서 경영 컨설팅을 받았다. 지난달 말 한국을 방한한 샹카르 대표를 WEEKLY BIZ가 만나 위드 코로나 시대 기업의 생존 전략에 대해 물었다.
◇위기는 승자 독식을 강화시킨다
-팬데믹이 기업 경영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위기가 닥치면 승자 독식 구도는 더욱 강화된다. 어떤 업종에 있든 팬데믹같이 변동성이 높은 위기 시에는 적극 대응하는 기업들만 크게 성공한다. 베인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5년간(2003~2007년) 평균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올린 글로벌 기업 3900곳을 대상으로 약 10년간(2007~2017년) 수익을 추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약 10%의 기업만이 위기 이후 연평균 14%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나머지 90% 기업의 성장률은 0%였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의 질문에서도 경쟁력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느냐”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질문할 때 선도 기업은 “이 기회에 경쟁 업체들을 밀어내고 치고 나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렇다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근에는 여러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충격에 빨리 대응하고 회복하는 능력, 즉 회복 탄력성이 중요해졌다. 대표적인 대응 수단은 M&A(인수합병)다. 올해 1~3분기 전 세계 M&A 거래액은 4조3300억달러(약 5090조원)로 이전 사상 최대치였던 2007년 1~3분기 거래액(4조1000억달러)을 넘어섰다. 특히 이종(異種) 산업 간 M&A(Scope deal)가 크게 늘었다. 5년 전의 7배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 등 사업 모델이 완전히 바뀌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증거다. 기업이 없던 역량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이 역량을 갖춘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확보하고 있다. 다만 이종 산업 간 M&A는 잘 모르는 사업에 대한 투자인 만큼 이 거래를 왜 하는지,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인수 후 통합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의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정해두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ESG에 투자하려면 테마섹을 보라
-앞으로는 어떤 산업 또는 기업이 크게 성장할 거라 보나.
“헬스케어 산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업을 꼽고 싶다. 우선 헬스케어 분야에선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처럼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혁신이 갑작스레 이뤄졌다. 향후 기타 질환의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신제품 개발의 호재가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보건 위기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막대하다는 점도 인류가 깨닫게 됐다. 앞으로 헬스케어 업종에 대한 투자가 현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유망 업종인 ESG 분야의 경우 테슬라나 비욘드미트(대체육 제조업체) 같은 기업 주가를 보면 지속가능성이란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회와 기업, 시민 모두 ESG에 대한 욕구가 있다. 특히 기후변화는 경제와 개별 기업에 리스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기회다. 기후변화를 기회 요인으로 간주하는 기업과 투자자들은 가장 큰 성과를 누릴 것이다.”
-ESG 투자는 이미 뜨겁다. 좋은 ESG 기업을 고르는 팁을 알려달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의 투자 종목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식물성 햄버거 패티 개발 업체 임파서블 푸드나 식물성 유제품 업체 퍼펙트 데이 같은 유명 ESG 기업이 사업 초기 단계일 때부터 투자한 테마섹은 ESG 종목을 고를 때 매우 체계적인 접근법을 가졌다. 현재 200~300개 종목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외부 기관을 통해 ESG 경영 여부와 리스크, 성과를 측정하고 투자 프로세스에 핵심 기준으로 반영한다. 아직 연구개발 단계인 차세대 친환경 기술에 장기 투자하기 위해 블랙록(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과 함께 지난 4월 ‘탈(脫)탄소화 파트너스(Decarbonization Partners)’라는 투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국, 대기업과 디지털 기업 간 협업 강화해야
-한국 기업들에 대한 평가도 궁금하다.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들은 팬데믹에 아주 효과적으로 대처했다고 본다. 특히 LG의 경우 모바일 사업부라는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핵심 사업인 배터리 사업 강화를 위해 분사(分社)하는 등 성공한 기업들이 위기 시에 주로 취하는 대표적인 조처를 했다. 이들 기업은 팬데믹 기간 오히려 기업 가치가 상승했다.”
-한국 기업 또는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축은 두 가지라고 본다. 삼성·LG·롯데 같은 전통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쿠팡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이다. 이 그룹 간에 협업할 기회가 더 많아야 한다. 대기업은 디지털 기업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조직을 애자일(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는 세포 단위 팀 구성)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신기술을 사업에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등을 배워야 한다. 반대로 디지털 기업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어떻게 사업을 글로벌화시켰는지, 창업자 정신은 어떻게 유지했는지 등을 배워야 한다. 이 협업 관계가 강화돼야 새로운 사업 개념을 창조하고, 한국이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 :
내·외부 충격으로 인한 피해를 빨리 극복하고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능력. 생태학 및 공학에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사회·경제·경영 분야에서도 활발히 쓰이고 있다.